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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한국 배구 전설, 왼손 거포의 원조 장윤창, 향년 65세 별세. 배구팬들 애도 쏟아져

by 무한제공자 202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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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이자, ‘왼손 거포’의 원조로 불렸던 장윤창 전 경기대학교 교수가 2025년 5월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그는 배구계의 아이콘이자, 수많은 팬들의 영웅으로 남았다. 이 글에서는 장윤창 교수의 생애, 주요 경력, 대표 별명과 업적, 그리고 배구계와 국민들에게 남긴 의미를 챕터별로 정리해 소개한다.

사진=KBS

생애와 학력: 전설의 시작

장윤창은 1960년 9월 10일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태어났다. 송산중학교, 인창고등학교, 경기대학교를 졸업하며 배구 선수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나 여러 종목을 시도했으나, 결국 배구에 정착해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 경력: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다

장윤창은 1978년, 인창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세계선수권대회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같은 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후에도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며 1979년 멕시코시티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동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화려한 성적을 쌓았다.
1983년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입단해 실업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1984년 대통령배 우승과 MVP, 베스트6에 선정되는 등 국내 최고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94년 은퇴할 때까지 고려증권의 5번 우승을 이끌었다.

 

별명과 스타일: ‘돌고래’와 ‘스카이 서브’의 원조

사진=KBS

장윤창은 왼손을 사용하는 공격수로, 남자배구 최초로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전략적으로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활처럼 휘어지는 허리와 높은 타점, 유연한 몸놀림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왼손 거포’의 원조로 불렸다.

 

은퇴 후 활동: 지도자와 교수로서의 삶

현역 은퇴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모교인 경기대학교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 등 다양한 행정가, 지도자로도 활약했다.

 

가족과 개인 생활

아들 장민국은 농구선수로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 현재 상무농구단에서 군복무 중이다. 장윤창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몸 관리로도 유명했다.

 

요약: 장윤창 교수의 인생과 업적

생애 및 학력: 1960년 충남 논산 출생, 송산중-인창고-경기대 졸업

선수 경력: 최연소 국가대표(17세), 세계선수권 4강, 아시안게임 금메달, 실업배구 우승 등

별명과 스타일: ‘돌고래’, ‘왼손 거포’, ‘스카이 서브’ 원조

은퇴 후 활동: 교수, 행정가, 지도자로 활약
가족: 아들 장민국(농구선수)

 

결론: 한국 배구의 아이콘, 장윤창의 유산

장윤창 교수는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이자, 지도자, 교수로서 배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뛰어난 실력과 투지, 그리고 후학 양성에 대한 열정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왼손 공격수’의 원조로서, 그리고 배구 팬들의 영웅으로서, 장윤창 교수의 삶과 업적에 깊은 존경과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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